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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여행

어디든 골라가도 뭉클함 보장! 인천 독립만세운동 성지순례

조회 701 최종수정일 2024-02-13
인천 독립운동 사진1

3·1독립만세운동(이하 3·1운동)은 고종황제의 국장일(1919.03.03)이 결정되면서 서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 예측한 민족 지도자들의 주도하에 일어난 독립운동이다. 신분, 종교 등에 상관없이 모든 계층이 참여했던 거족적인 독립운동. 3·1운동은 인천에서도 뜨겁게 일어났다.

빨간 날이라서 쉬는 게 아닌 특별한 하루를 보내보고 싶다면, 그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인천 독립운동 성지순례길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동구, 인천 독립만세운동의 시작을 열다

1919년 3월 6일, 동맹시위를 위해 인천공립보통학교 3학년생 김명진, 이만용, 박철준 등은 ‘인천공립보통학교’와 ‘인천공립상업학교’의 동맹 휴교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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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천은 강화도 조약과 을사 조약으로 인해 어떤 지역보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컸다. 김명진과 다른 생도들은 성공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학교 선생들이 경찰서와 연락하지 못하도록 전화선을 절단하고 수화기를 부숴 외부 통신망을 차단했다.

학생들과 지역 주민 300여 명은 만세를 부르며 인천부의 중심도로 동쪽 끝까지 시위를 전개했다. 일본의 영향력이 컸던 인천의 심장부에서 3일이나 진행됐던 만큼, 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라 불리는 이곳은 역사적 의의가 큰 장소로 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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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독립운동 사진6

또 여기에는 19세기 말 미국 여자 선교사들의 합숙소였던 ‘인천 기독교사회복지관’과 인천 최초의 약방인 ‘이십세기 약방’도 있으니 함께 관람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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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영초등학교 구교사

  • 주소인천광역시 동구 우각로 15번길 16
  • 영화초등학교 본관

  • 주소인천광역시 동구 우각로 39 영화초등학교 본관동

중구, ‘만국공원’ 등지에서 만세 운동 잇따라 일어나다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은 개화기인 1888년 조성된 한국 최초 서구식 공원이다. 1919년 3월 9일, 기독교 신자와 학생들이 이곳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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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공원(현 자유공원)의 최초 명칭은 각국공원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며 만국공원으로 바뀌었다. 이후 해방기와 6·25한국전쟁 전후로 서공원, 야마테 공원, 자유공원까지 명칭 속에 한국의 근현대사가 담겨 있다. 응봉산 전역을 아우르고 있고 정상에 한미수교 백주년기념탑과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으니 함께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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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심지에서 본격적인 3·1운동이 전개됨과 동시에 조선인 마을 및 기독교와 관련된 장소 등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서>가 배포됐다. 인천부(경기도 시흥지역을 관할하던 행정구역) 곳곳에서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를 늘려준 하나의 계기가 된 셈이다. 자유공원 인근에 위치한 해안성당교육관과 답동성당은 개항기~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곳으로 희소성과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특히 해안성당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새 단장 중이며, 2023년 하반기에 시범 운영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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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돌아온 대장 김창수, 백범 김구

1896년 황해도에서 일어난 ‘치하포 사건’으로 구금된 대장 김창수는 탈옥했다. 이후 김주경을 만나기 위해 강화도로 떠났으나 만나지 못했고 그의 동생인 김진경의 집에 3개월간 머물렀다. 여기서 김주경 선생의 친구인 유완무의 권유로 김창수에서 김구로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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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7월 17일이라는 글자가 있어서 1928가옥이라 불리기도 하는 대명헌은 현재 게스트하우스로 꾸며졌다. 석담 선생의 화폭과 장승업의 제자로 알려진 소정의 그림 등 작품 10여 점 곳곳에 걸려 있으니 관람 시 꼭 챙겨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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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스물 둘에 사형 선고를 받아 현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다. 인천은 그를 상해 임시정부를 지킨 거인 백범 김구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도운 제2의 고향이다. 그 이야기가 깃든 신포동 일대는 오늘날 청년 김구 역사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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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하면 대부분 유관순 열사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당시 참가한 독립운동가는 무려 1만 여명이 넘었다.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인 백범 김구 선생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 김구 역사거리는 김구 선생이 옥고를 치른 감리서와 탈옥했던 길, 강제 노역한 축항 등 고증을 거친 테마거리로 재탄생한 곳이니 꼭 방문해보길 바란다.

  • 자유공원

  • 주소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32번길 46
  • 이용요금무료
  • 답동성당

  • 주소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 50번길 2
  • 이용문의032-762-7613
  • 이용요금무료
  • 웹사이트http://dapdong.or.kr
  • 대명헌

  • 주소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남문안길 7 남문한옥 대명헌
  • 이용문의032-934-2021
  • 이용시간입실 15:00, 퇴실 12:00

계양구, 인천에서 가장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펼치다

잉어가 많이 잡혀 황어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황어장터는 인천의 대표 시장이다. 1919년 3월 24일, 이곳에서 장날을 이용해 심혁성을 비롯한 임성춘, 이은선 등이 태극기를 휘두르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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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혁성은 일본 순사들에게 체포됐고,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던 임성춘과 이은선 등은 순사 일행을 포위해 그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이때 이은선은 순사들이 무차별적으로 휘두른 무기에 찔려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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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이 순사들의 진압으로 사망한 사건은 일본 경찰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조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밤 전원순과 최성옥, 이금산 등을 선두로 한 100여 명은 면사무소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당시의 모습은 <황어장터 3·1 만세 운동 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이은선 지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아 세워진 추모비도 잊지 말고 챙겨보자.

  • 황어장터 3·1 만세 운동 기념관

  • 주소인천광역시 계양구 황어로 126번길 5
  • 이용문의032-430-7948
  • 이용요금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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