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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여행

한양 방어의 최전선, 강화도

조회 1,164 최종수정일 2023-02-20

강화도는 서해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군사적, 지리적 요충지다. 조선시대에는 정묘호란(1627),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등의 외침을 겪으며 왕조를 사수하던 호국의 첨병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 탓에 외침이 잦았던 강화도 해안에는 외세에 대항하던 방어시설이 남아 있다.

강화 광성보

1871년(신미양요) 미국 함대가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왔다. 조선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대포를 쏘며 강렬히 저항했지만 미국의 군사력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월 23일 초지진이 함락되고, 이튿날 덕진진이 함락되었다. 미국의 공격은 광성보로 향했고, 당시 광성보를 지키던 중군 어재연과 수하 군사들은 힘껏 싸웠다. 결과는 참혹했다. 중상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소수를 제외하고 전원 순국하였다.

강화 광성보 사진1
강화 광성보 사진2 강화 광성보 사진3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함께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종합 돈대 세트’라 불릴 만큼 돈대며 진들이 고루 갖춰져 있다. 전망 좋은 역사공원으로 광성돈대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를 끼고 있다. 초입에 있는 안해루와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바다 끝에 서면 아름답기로 유명한 용두돈대다. 물결이 회오리처럼 소용돌이치는 손돌목 해협이 돈대 주위를 흘러 아찔하다.

강화 광성보 사진4 강화 광성보 사진5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 전화 032-930-7070
  • 이용시간 09:00~18:00, 연중무휴
  • 이용요금 어른 1,100원, 청소년 및 어린이 700원
  • 웹사이트 www.ganghwa.go.kr/

강화 초지진

신미양요(1871) 때 강화해협에 나타난 미국 함대는 해병 450명을 상륙시키기 위해 함포를 쏘아 댔다. 초지진 수비대는 대포를 쏘며 저지했지만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4월 23일 점령당했다. 군기고와 화약창고 등 군사 시설이 모두 파괴되었다. 1875년 9월에는 일본 군함인 운요호가 부산에서 서해안을 따라 강화도를 침범했다. 초지진 포대에서 포를 쏘며 막았지만 운요호의 함포 공격에 초지진은 무너졌다.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조선에 개항을 요구했고, 그 결과로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강화 초지진 사진1
강화 초지진 사진2 강화 초지진 사진3

외세의 침략으로 초지진은 완전히 무너졌다. 초지돈·장자평돈·섬암돈 등 3개의 돈대가 소속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초지돈만 1973년에 복원되었다. 타원형을 이루는 초지돈에는 포좌 3개소, 총좌 100여 개가 있다. 수령 약 400년의 소나무가 있는데, 소나무에는 전투 중 날아온 포탄 파편에 의한 상처가 남아 있다.

강화 초지진 사진4 강화 초지진 사진5
  • 주소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 58
  • 전화032-930-7000
  • 이용시간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연중무휴
  • 이용요금어른 700원, 청소년 500원
  • 웹사이트www.ganghwa.go.kr/

강화 덕진진

병자호란(1636)이 끝나고 조선은 강화도를 지키기 위해 내성·외성·돈대·진보 등의 12진보를 설치했다. 덕진진은 그 중의 하나이다. 숙종 5년(1679)에는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했고,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였다. 덕진진이 외세에 대항한 것은 병인양요(1866) 때다. 프랑스 신부 리델과 조선인 천주교도 3명을 길잡이 삼아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군은 쉽게 강화도를 점령했다. 각종 특산물과 금괴, 무기 등은 물론 외규장각에 보관하던 장서 수천 권을 약탈했다. 이때 순무영천총 양헌수가 10월 1일 부대를 이끌고 덕진진을 통해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진을 치고, 10월 3일 프랑스군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프랑스군은 강화성을 약탈한 뒤 철수했다.

강화 덕진진 사진1
강화 덕진진 사진2 강화 덕진진 사진3

신미양요(1871) 때는 미국 함대를 맞아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끝에 승리했으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이때 성벽이 모두 파괴되었다. 신미양요 때 무너진 성곽과 돈대, 포대는 1976년 복원되었다.

강화 덕진진 사진4 강화 덕진진 사진5
  • 주소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46
  • 전화032-930-7074
  • 이용시간09:00~18:00, 연중무휴
  • 이용요금어른 700원, 청소년 500원
  • 웹사이트www.ganghwa.go.kr/

월곶돈대(연미정)

“월곶이·적북도·통진·풍덕은 두 강의 경계가 나뉘어지는 곳으로서, 수로 가운데 제일 요해처가 되고, 배를 정박하기도 편하니, 만약 월곶이부터 섬암까지 그 사이에 주사를 벌여 배치해 놓고 조석의 형세를 타서, 배를 운항시킨다면 오히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7년 5월 21일 강화 유수 이선이 올린 상소의 일부다. 내용은 월곶이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요충지이므로 군선을 알맞게 배치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군사적 요충지인 월곶이에 설치된 방어시설이 월곶돈대다. 월곶진에 속하는 돈대로 강화해협의 북쪽 바다를 지키던 시설이다. 평상시 월곶진의 중요한 임무는 바다에서 들어오는 외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검문과 수색을 엄격하게 하는 것이었다.

월곶돈대(연미정) 사진1
월곶돈대(연미정) 사진2 월곶돈대(연미정) 사진3

월곶돈대에는 강화 8경 중 하나인 연미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연미정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조선 인조 5년 정묘호란(1627) 때에는 후금과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월곶돈대(연미정) 사진4 월곶돈대(연미정) 사진5
  • 주소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 242
  • 전화032-930-7072
  • 웹사이트www.ganghw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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