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 머물러 있지 않은, 일상 속 살아있는 예술 녹청자박물관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박물관에 쉬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부모들은 책을 통한 교육에서 벗어나 자녀들의 견문을 넓혀줄 현장 교육으로 박물관을 택하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시간을 내서 멀리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방학, 주말, 공휴일 등의 여유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고 싶을 때 박물관처럼 ‘적당한’ 곳도 많지 않은데, 아이들은 여전히 지루함을 떨쳐내지 못한다.

왜일까?
박물관이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전쯤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3편까지 제작된 코미디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Night At The Museum)’처럼 모든 박물관이 생동감 넘친다면 어떤 아이인들 흥미를 느끼지 못할까? 게다가 박물관은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기도 하다. 마음 편히 사진을 찍는 것도 쉽지 않고, 손대지 말아야 할 것들도 가득하다. 신기한 것들을 만져도 보고 싶고, 사진도 찍고픈 아이들에겐 고문 같은 일이다. 분명 ‘현장 교육’이기는 하나, 넘치는 현장감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박물관 탐방이다. 그렇지만 인천 서구 경서동에 자리한 녹청자박물관은 보통의 박물관을 넘어서는 생생한 즐거움이 있다.

녹청자 박물관은 인천 서구 경서동 녹청자 요지(국가사적 211호)와 이곳에서 출토된 녹청자에 대한 학술적인 조사와 연구를 위해 설립되었던 ‘녹청자도요지사료관’에서 출발했다. 2002년에 사료관으로 문을 열고 약 10년이 지난 2012년, 1종 전문 박물관으로 등록, 개관하면서 국내 유일의 녹청자 전문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그런데 ‘녹청자’라는 게 대체 어떤 것일까? 녹색 빛을 띠는 청자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녹청자는 1960년대 중반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이 인천에서 녹청자 요지를 발견하면서 처음 알려지게 된 고려시대의 전통 도자기로 녹갈색의 유약을 발라 구워낸 것이다.
보통 고려시대의 도자기를 생각하면 화려하고 정교한 멋이 살아 있는 고려 상감청자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녹청자는 그와는 달리 다소 거칠고 투박한 느낌의 자기다. 뭐랄까? 높은 수준의 기술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든 정밀한 예술품이라기보다는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짧은 시간 내에 만든 생활용품처럼 느껴진다.
오늘날까지 멀쩡하게 전해진 녹청자의 표본이 많다고는 할 수 없으니, 단편적인 정보에서 비롯된 짧은 생각일 수도 있으나 확실히 서민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도자기처럼 보인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주로 대접, 접시, 병, 그릇, 항아리 등으로 만들어져 실생활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이며, 소박하고 수수한 가운데에서도 제법 은은한 멋이 풍겨져 나온다.
도자기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니 밑바닥이 드러나기 전에 어서 녹청자 박물관 얘기로 넘어가야겠다.
이곳은 녹청자의 역사와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을 만나볼 수 있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흥미로운 문화공간이다. 도자기라는 것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고 오늘날에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물품이 아니듯 박물관 역시 일상 속의 즐거운 배움이 함께하는 곳이다.
먼저 1층의 역사전시실에서는 도자기의 태동에서부터 오늘날까지의 시대별 흐름을 알 수 있다.
각 시기를 대표하는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다수의 녹청자, 청자 유물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경서동 녹청자도요지의 실제 가마 내부를 재현한 바닥과 도자기 제작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형 인형이 인상적이다. 역사전시실 옆에 자리한 기획전시실은 2004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현대도예공모전> 수상작들과 인천의 현대 도예가들이 만든 작품들을 보여준다. 얼핏 봐서는 역사전시실 속 전통 자기들과 닮은 구석이 없는 듯하지만 시간을 두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근히 닮아 있는 현대 도자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가장 먼저 도예교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일일체험실과 정규반 강의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문가의 지도를 통해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 볼 수 있는 도자기 일일 체험과 평생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정규교육과정이 운영된다. 일일도자기체험은 물레성형, 흙가래성형, 토우만들기, 판상성형, 상회도자기 체험을 통해 자신만의 접시, 그릇, 컵, 토우 등을 만들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정규교육과정은 월 4회/8회 하루 3시간씩 진행되며 도자기공예개론, 생활도예실기, 현대도예실기 등 보다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따른다.
교실에 들어가서 제대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상당히 심각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작업에 열중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 민폐가 될 것 같았다. 작업 중인 분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뭔가 편치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밖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살짝 바라본 도예교실 내부에는 다양한 종류의 흙이 마련되어 있었고, 물레를 비롯해 흙을 반죽하는 여러 가지 기계와 도구, 유약, 용기 등도 다수 구비되어 있었다. 딱 봐도 단순한 흥미 위주의 일회성 체험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느낌이 있었다. 성인이든 학생이든 어린이든 각자 나름대로 도자기에 대한 이해를 높여 완성도 있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는 유용한 체험 프로그램 같았다.
그밖에 방문객들이 전시실 관람을 마친 후 휴식을 취하며 이곳에서 제작된 도예 작품과 관련 문헌, 자료 등을 볼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마련되어 있으며, 박물관 외부에는 야외체험마당이 조성되어 있다. 야외 전시장에는 관람객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전통 가마를 재현해 놓아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으며, 매년 전통 가마 행사를 통해 관람객들이 옛 방식대로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는 도공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또한 인천 서곶 지역의 옹기 2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어 인천 옹기의 특징과 역사를 살펴볼 수도 있다.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인천 최초의 공식 문화재로 꼽히는 녹청자 도요지(가마터)도 있으니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인근 골프장 내에 자리해 있고, 특별히 감탄을 자아낼 만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여유가 없다면 녹청자박물관만을 관람해도 충분히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박물관 근처에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의 메인 스타디움이었던 아시아드주경기장이 있으니 산책 삼아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녹청자와 녹청자 박물관은 향후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인천을 찾는 여행자들이 이곳에 들러 자신만의 도자기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박물관은 무료로 입장 가능하며, 도자기 체험 비용은 종류별로 상이하나 5,000원부터 10,000원까지로 저렴한 편이다.
20인 이상의 단체는 15~20% 정도 할인된 요금으로 체험할 수 있다.
  • 인천광역시 서구 녹청자 박물관
    • 주소 : 인천광역시 서구 도요지로 54(경서동)
    • 교통안내 : 공항철도 검암역 or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에서 버스 탑승
    • 이용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 입장료 :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