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근대문화와의 만남, 개항장 거리
근대화가 시작된 곳, 서해안 제1의 무역항구, 인천의 개항장 누리길을 한번 방문해볼까?
우선 인천역에서 출발해보자. 인천역은 그 자체가 역사적인 장소이다.
우리나라에서 철도가 개통된 날은 1899년 9월 18일인데, 그 최초의 순간에 개통식을 한 곳이 바로 인천역이다.
지금의 역사 건물은 1925년에 지어진 이래 현재까지 그 형태를 이어오고 있다.

1호선의 끝이자 개항의 출발점인 인천, 이곳을 나오면 횡단보도 맞은편으로 차이나타운의 시작을 알리는 화려한 안내판이 보인다.
보통 차이나타운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이 언덕길에 늘어선 상점들을 따라 걸으며 인천역 탐방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조금 다른 길로 개항장 누리길을 찾아가보도록 한다.

인천역을 나와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과거 영국 영사관 자리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호텔이 마주보인다.
가끔 이 길을 지나며 인천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대에 서 있는 영국 영사관의 과거 모습을 상상해보게 된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을 방문한 그 시대의 영국인들은 과연 인천항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천역에서 길을 건너 파라다이스 호텔을 건너편 오른쪽에 두고 쭉 걷다보면, 어느새 한중문화관이 나타난다.
파라다이스 호텔을 따라 걷는 길이 조금 조용했다면, 여기서부터는 정말 인천의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중문화관은 2005년 중구청에서 건립한 곳으로, 한국과 중국의 서로 다른 문화를 비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한중문화관을 지나면 적벽돌 창고건물인 인천아트플랫폼이 있다.
이 창고건물은 과거 인천항의 물류운송 업무량이 늘어나자 갯벌을 매립하여 지은 것으로, 현재는 작가 레지던시 및 전시회 운영, 플리마켓 개최 등 인천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창작 및 전시, 교육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공간이다.
약 2500여평의 쭉 뻗은 대지 위에 세워진 창고건물 및 (구)일본우선주식회사 같은 개항기 시대의 건물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천아트플랫폼을 찾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개항장 누리길로 가보자.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중심으로 각각 중국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늘어선 풍경이 독특하다.
인천은 부산과 원산에 이어 1883년에 세 번째로 조계가 설치된 곳이다.
조계란 외국인의 거주 또는 무역을 위해 조성된 특정 구역을 이르는 말이다.
1883년에 조성된 일본 조계지와 1884년의 청국 조계지의 경계에 놓여있는 이 계단은 자유공원과도 연결되어있다.
계단 위를 올려다보면 인물석상이 눈에 띄는데,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공자이다.
공자상은 중국 청도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높은 계단이기는 하지만, 여기 개항장 누리길을 내려다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겠다.
청일 조계지를 가르는 계단 옆으로 녹색 기둥과 테라스가 인상적인 중국식 주택이 이목을 끈다.
딱 보기에도 역사가 느껴지는 이 2층 주택건물은 1939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주민 분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집 가운데 마당을 두고 사방으로 방을 배치한 사합원(四合院)형태로 폐쇄성이 강한 중국식 연립주호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
지금으로부터 77년도 더 된 건물임에도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이 건물은 2006년에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공개된 공간이 아닌 만큼 그 내부 모습이 더욱 궁금해지는 곳이다.
이번엔 반대편의 일본 조계지 쪽을 살펴보자. 개항기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듯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일본 조계지가 시작되는 입구에 보이는 공사장 터는 최초의 외국인 호텔이었던 대불호텔이 있었던 곳이다.
대불호텔은 서울 정동에 세워졌던 손탁호텔보다 14년이나 먼저 지어진 서양식 호텔로, 제물포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이용한 숙박시설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팔기 시작한 곳도 손탁호텔이 아닌 바로 이 대불호텔일 것이라는 추측도 생겨나고 있다.
손님들을 영어로 맞이했고, 서양식 식사를 제공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터만 남아있어 그때 모습을 찾을 순 없지만, 앞으로 전시장이 조성된다고 하니 또 하나의 변화를 기대해볼만하다.
일본식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가운데 교회 건물 한 채가 눈에 띈다.
아치형의 문탑과 고전적인 건축양식 때문인지, 양옆의 일본식 목조 건물들 사이에서도 어색하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는 이 교회의 이름은 관동교회이다. 파란 하늘과 높게 솟은 첨탑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관동교회는 1954년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도움을 받아, 폭격으로 부서진 파벽돌들로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1908년도에 일본인들이 그 자리에 일본인 교회를 세웠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일본식 목조건물들은 현재 카페나 상점 또는 중구청에서 사용하는 부속건물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오래된 세탁소도 인상적이다. 이 건축물들 또한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관동교회 옆에 위치한 카페 ‘팟알’은 현재 일본 조계지에 남아있는 유일한 정가 양식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본인 히로이케데시로가 1885년 하역회사를 설립하면서 지은 건물로, 개항기부터 광복까지 1층은 사무소로, 2층과 3층은 주택으로 사용되어왔다고 한다.
카페의 실내 분위기도 외관 못지않게 좋다.
카페의 이름처럼 팥죽, 팥빙수 등 팥으로 만든 음식과 나가사키 카스테라가 유명한 곳이다.
총 3개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며, 현재 1층은 카페로 쓰이고 있고 2층은 대관을 하여 부분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다다미방으로 이루어져 있는 2층에서는, 전시나 포럼 등이 열리기도 한다.
일본식 가옥에 관심이 많으신 분은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한편 목조건물이 외에도 일본제1은행, 제18은행, 인천우체국 등등 개항기 당시 주요 기관 건축물들도 만나볼 수 있다.
석조, 목조, 벽돌 등의 건축자재를 이용한 이국적인 건축양식이 인상적이다.
현재 일본제1은행은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일본제18은행은 인천개항근대건축전시관으로 운영되어 건물 안팎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개항장 누리길 가운데 위치한 중구청에는 개항장 누리길의 전체지도와 더불어 인천의 역사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중구청 건물 역시 예전 인천부 청사로 지어져 1985년 현 인천시청이 구월동에 자리잡기 전 인천시청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홍예문이다.
어느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이곳은 TV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등장한 곳이다. 홍예문은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굴게 만든 문으로, 응봉산 산허를 잘라 높이 약 13m, 폭 약 7m의 화강암 석축을 쌓고 터널처럼 만든 석문(石門)이다.
대한제국 시대에 철도 건설을 담당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 준공하였다. 당시 인천 중앙동과 관동 등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자 만석동 방면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이 홍예문을 뚫었다고 한다.
공사를 진행할 때 예기치 못한 거대한 암석을 만나 공사 기간이 오래 걸렸다 한다.
당시 일본의 토목공법을 알 수 있는 사료로서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2002년 인천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다양한 ‘최초’가 이곳 인천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다양성과 교류의 역사가 숨 쉬는 인천의 개항장 누리길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둘러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