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의 빛 밝힌 인천을 말한다 인천상륙작전의 흔적을 찾아서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흥행으로 함께 주목받고 있는 인천의 의미 있는 명소들을 알아보자!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 희생한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의의를 한번 돌아봤으면 한다.
팔미도 등대
인천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5.7km 떨어진 작은섬 팔미도. 모래톱으로 연결된 남섬과 북섬이 썰물 때 물이 빠지면 팔(八)자처럼 양쪽으로 뻗어 내린 꼬리(尾)와 같다고 해 ‘팔미도’이다. 아름다운 섬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불을 밝힌 팔미도 등대가 있어 더욱 의미 있는 곳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을 보면 가장 중요한 미션이 바로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는 맥아더 사령관의 작전 명령이다. 이 작전 명령을 받은 대북첩보부대가 투입해 목숨을 걸고 등대의 불을 밝히는 장면에 저절로 감동과 뜨거운 눈물이 나온다.
팔미도는 군사적인 이유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다가 2009년에 개방 되었다. 팔미도 등대 여행은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시작한다. 유람선은 연안부두와 팔미도 사이를 왕복 운항한다. 편도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팔미도를 오가는 시간을 포함 2시간 30분 정도가 등대 여행의 소요시간이다.
팔미도에 도착하면 문화해설사가 등대와 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문화해설사를 따라 등대와 섬을 돌아볼 수 있고, 혼자서도 가능하다. 선착장에서 등대가 있는 정상까지 가는 길에 팔미도 등대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연합군이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의 벽화가 있다.
이를 지나면 ‘천녀의 빛’ 조형물이 나온다. 팔미도 등대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언덕 위에 오르면 등대 두 개가 있는데 왼쪽에 작은 것이 ‘원조’ 팔미도 등대다. 옛 등대 뒤로 새 등대가 있다. 옛 등대는 100년 동안 바다를 비추다 2003년에 새 등대가 임무를 받았다고 한다. 4층 하늘정원 전망대에서 푸르고 웅장한 서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1950년 9월 15일 새벽 팔미도 등대의 밝은 길안내로 연합군은 월미도로 향할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최대의 격전지, 월미도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상륙 자체가 쉽지 않아 성공 확률이 거의 없다고 논란이 된 ‘크로마이트’ 작전이 전개된다. 월미도 해변 ‘그린비치’가 1차 공격지. 같은 날 오후 블루비치, 레드비치 상륙이 이어진다.
그래서, 월미공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공원 북쪽에 있는 ‘그린비치’ 유적이다. 이곳은 인천상륙작전 당시 상륙부대가 처음 인천에 발을 디딘 곳이다. 당시 해안이었던 지형은 지금은 너른 육지로 바뀌었고 조그마한 안내판만이 그날을 증언하고 있다.
또한, 월미공원의 2㎞의 산책로가 일품이다. 산책로 곳곳에는 ‘월미 평화의 나무’가 보인다. 인천상륙작전 과정에서 월미도는 말 그대로 불바다가 됐다. 영화에서 장학수(이정재 분)와 림계진(이범수 분)이 마지막 대결을 하는 곳이 바로 ‘월미도’다.
정상 부근의 ‘월미전망대’에 오르면 인천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고 대형 선박이 부두에 배를 붙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천항 갑문이 바로 아래에 있다.
맥아더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
월미공원에서 직선거리로 1.2㎞, 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으면 인천 ‘자유공원’이 있다. 개항 시기 인천이 개발될 때부터 높은 지형과 시원한 날씨로 공원이었던 자유공원에는 인천상륙작전을 주도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다.
맥아더는 눈길을 월미도를 향해 그날을 회상하고 있는 듯하다. 맥아더 동상 외에도 인천학도의용대호국기념탑 등이 있으니 찾아볼 만하다.
    •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남로 25
    • 문의전화 : 032-760-7597
    • 교통안내 :
      자가용
      서울:성산로(7.7km) →국회대로(5.1km) → 경인고속도로(17.6km)
      인천:주안로(2.8km) → 경인로(1.5km) → 참외전로(2.4km)

      대중교통
      서울:1호선 시청역 → 인천역 하차
      인천:인천2호선 인천시청역 → 1호선 주안역 → 인천역 하차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사실을 보존함과 동시 참전국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자유민주수호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된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에 가보면 당시 상황에 대한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당시의 장갑차, 전투기 등의 대형장비가 외부에 전시되어 있고, 내부에는 유도탄 등의 소규모 무기가 전시되어 있다.
미 수뇌부들은 좁은 수로와 조수간만의 차이, 빠른 조류 속도 등을 이유로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하지만 같은 이유로 맥아더 장군은 인천을 고집했다. 스스로도 ‘5000분의 1의 도박’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불가능해 보였던 작전은 적의 허를 찌르며 가장 성공적인 작전으로 역시에 남게 되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것은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용기와 희생이 아니었을까?
인천상륙작전의 인천을 돌아보며 이분들의 희생정신을 깊이 새겨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