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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다 조기섬 연평도

연평도는 조기섬이었다.
조기가 사라진 지금은 ‘꽃게섬’이 되었지만 연평도의 역사에서 조기의 역할은 꽃게와 비교할 수도 없이 크다.
연평도의 조기잡이는 조선 인조 때 명장이었던 임경업 장군이 처음 시작했다고 전해져온다

임경업 장군이 병자호란의 치욕을 안긴 청나라를 치기 위해 중국으로 향하다 마실 물과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연평도에 머물게 되었고, 섬사람들에게 안목과 당섬 사이의 얕은 바다에 가시나무를 촘촘히 박아 조기를 잡는 ‘어설법’을 알려 준 것이다.
그렇게 연평도 조기잡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역사관 옆에는 등대공원과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조국을 위해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평화공원이 있다.
그곳에서 전시용 탱크와 장갑차, 헬리콥터 등 을 볼 수 있다.
안목어장의 북동쪽 바닷가에 우뚝 솟은 언덕에는 망향전망대가 있다.
북한 땅을 가장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곳이고 북방한계선이 지나는 남과 북의 바다를 넘나들며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들을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연평도는 인천항과의 거리는 뱃길로 122km나 되지만 북한 강령반도의 육세미까지는 12.7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을 만큼 가깝다.
일제시대까지도 연평도의 행정구역은 물론, 생활권도 황해도 해주에 속했다.

지금도 연평도 주민의 70%가량은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이다. 6.25전쟁 때 잠시 피난살이 왔다가 돌아가지 못 한 채 살고 있다.
이곳 전망대에 솟은 망향비에는 실향민의 슬픔을 노래한‘망향가’가 새겨져 있다.

어메 뜨거운 심정이 살아
모성의 피 되어 가슴 절절 흐르네
어매여, 시골 울 엄매여!
어매 잠든 고향 땅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전망대를 오르는 길목, 지난 2010년 우리 해병대 장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던 북한의 연평 포격을 기억할 할 수 있는 흔적에서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잊고 있던 전쟁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전망대를 내려와 2010년 북한 포격 도발 이후 건립된 안보교육장으로 들어서는 진입로에서도 포격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안보교육장 야외전시장에는 포격 맞은 민간 가옥의 모습도 그대로 보존해놓았다. 안보교육장은 포격 잔해물 전시실, 추모공간과 체험공간, 대피시설이 구성되어 있다.
안보교육장은 포격 잔해물 전시실, 추모공간과 체험공간, 대피시설이 구성되어 있다.
  • 안보 교육장
    • 위 치 : 연평면 연평리 174번지
    • 운영시간 : 09:00~18:00(※ 동절기는 변동될 수 있음)
    • 휴 관 일 : 매주 월요일, 설날, 구정, 추석 당일
    • 입 장 료 : 무료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를 잇는 당섬에서 연평해전을 기리는 연평해전전승비를 만날 수 있다.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7일부터 북방한계선을 불법 침범해 공격하던 북한 해군에 대해 역ㆍ충돌식 밀어내기 작전을 수행하던 우리 해군이 6월 15일 적의 선체사격을 받자, 즉각 대응한 14분간의 해전의 승리를 기린 곳이다. 연평도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안보의 중요성과 평화의 소중함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섬이다.